아우구스투스는 공화정을 되살렸다면서 왜 황제가 되었을까?
원로원은 남았고 공직도 이어졌지만 권력은 한 사람에게 모였습니다. 아우구스투스의 업적문과 후대 기록을 통해 로마 제정의 출발을 읽습니다.

공화정을 되돌려 주었다는 사람이 로마의 첫 황제로 불린다. 아우구스투스를 처음 만날 때 생기는 이상한 모순이다. 그는 모든 옛 제도를 없애고 새로운 왕좌를 선언한 방식으로 통치하지 않았다. 낯익은 제도의 이름이 남은 가운데 누가 실질적인 힘을 가졌는지를 보아야 한다.
내전을 끝낸 사람이 얻은 위치
카이사르 사후 옥타비아누스는 경쟁자들과 싸워 최종적인 우위를 확보했다. 이후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은 인물이 그다. 오랜 내전을 겪은 로마 사회에는 안정과 질서를 바라는 요구가 있었다.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능력은 강력한 정치적 자산이었다.
그렇다고 로마인이 모두 한 사람의 무제한 권력을 원했다는 뜻은 아니다. 공화정의 전통과 원로원의 위신은 여전히 중요했다. 카이사르의 최후도 권력 집중을 어떤 모습으로 드러내는지가 위험한 문제임을 보여 주었다. 승리한 장군이 지속적인 통치자로 남으려면 무력 이외의 언어가 필요했다.
자신이 남긴 설명은 무엇이었나
아우구스투스는 업적문에서 내전을 끝낸 뒤 국가의 일을 원로원과 로마 인민에게 돌려주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특별한 지위를 설명하면서 다른 공직자와의 형식적 관계도 강조했다. 이 문서는 그가 후대에 어떻게 기억되기를 원했는지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다.
하지만 자기 업적을 적은 글을 중립적인 정치 해설서처럼 읽을 수는 없다. 불리한 과정이나 강제된 합의가 같은 비중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글에 거짓말이 있는지 없는지만 따지기보다, 어떤 사실을 고르고 어떤 표현으로 배열했는지를 살피는 편이 유용하다. 통치자의 자기소개도 통치의 일부였다.
제도가 남아 있어도 힘은 달라질 수 있다
원로원과 여러 공직은 계속 존재했다. 그러나 군사력과 핵심적인 권한이 아우구스투스를 중심으로 결합하면서 실제 결정 구조는 달라졌다. 한 직책의 이름만 보면 이전과 비슷해도 여러 권한을 누가 함께 행사하는지 보면 변화가 드러난다. 제도의 간판과 권력의 분포는 언제나 일치하지 않는다.
아우구스투스의 지배 방식은 원수정, 즉 프린키파투스라고 불린다. 자신을 시민들 가운데 앞선 존재로 내세우는 표현은 왕이라는 말이 지닌 부담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표현이 온건하다고 군대의 지지와 개인에게 집중된 영향력이 작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명칭보다 실제 관계가 중요하다.
타키투스가 본 다른 장면
후대 역사가 타키투스는 공화정의 자유가 줄어드는 과정과 권력에 순응하는 사람들을 비판적으로 그렸다. 아우구스투스의 업적문과 함께 읽으면 같은 질서가 안정의 회복으로도, 자유의 상실로도 서술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느 한쪽 문서만 읽을 때보다 질문이 많아진다.
물론 타키투스 역시 자신의 정치적 경험과 관점을 가진 저자다. 그의 비판을 곧바로 당시 모든 사람의 감정으로 확대할 수는 없다. 전쟁에 지친 시민, 지위를 지키려는 귀족, 보상을 기다리는 병사가 새 질서를 바라보는 이유는 달랐을 것이다. 한 체제가 유지되는 데에는 서로 다른 기대와 타협이 겹친다.
복구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새 질서
기원전 27년은 흔히 제정의 출발점으로 쓰인다. 하지만 로마가 이날 아침 완전히 다른 나라로 바뀌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권력의 배치와 관행은 여러 단계에 걸쳐 정리되었다. 아우구스투스 사후 티베리우스로 이어지는 승계에서도 군대와 원로원, 황실의 관계는 중요한 문제로 남았다.
알렉산드로스 사후의 분열과 비교하면 개인의 승리를 지속 가능한 통치로 바꾸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인다. 그보다 앞선 루비콘 도하는 군사력이 정치의 경계를 넘는 순간을 보여 준다. 아우구스투스의 역설을 푸는 열쇠는 복구라는 말을 지우는 데 있지 않다. 무엇을 복구했다고 말하면서 무엇을 새로 집중시켰는지 나누어 읽는 데 있다.
이야기의 바탕이 된 자료
- Res Gestae Divi Augusti (새 창)아우구스투스 · LacusCurtius · 34장, 국가의 권한을 돌려주었다는 선언
- The Annals, Book I (새 창)타키투스 · Internet Classics Archive · 1–4절 및 아우구스투스 사후의 권력
- The Julio-Claudian Dynasty (27 B.C.–68 A.D.) (새 창)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군대와 원로원의 관계
자료의 성격과 전승의 차이는 본문에서 구분해 설명합니다.
ONE THING TO REMEMBER
한 줄 정리
아우구스투스는 공화정의 제도와 언어를 유지하면서 군대와 핵심 권한을 자신에게 집중시켜 새로운 통치 질서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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