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른베르크 판결 80년, 명령을 따랐다는 말로 충분했을까?
1946년 뉘른베르크 판결 80주년을 맞아 국가의 범죄와 개인의 책임을 구분해 읽습니다. 명령, 증거, 공정한 재판은 어떻게 함께 문제가 되었을까요?

2026년 10월은 뉘른베르크 주요 전범 재판의 판결이 나온 지 80년이 되는 달입니다. 재판 기념관의 기록에 따르면 판결은 1946년 9월 30일과 10월 1일에 낭독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과 누가 무엇에 책임을 져야 하는지는 같은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법정은 국가의 이름으로 벌어진 일을 개인의 행위로 다시 따져야 했습니다.
패전국의 지도자들이 법정에 서다
제2차 세계대전 뒤 미국·영국·프랑스·소련은 국제군사재판을 열어 나치 독일의 주요 지도자들을 기소했습니다. 침략전쟁과 전쟁 중의 범죄,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박해를 어떤 방식으로 다룰 것인지가 문제였습니다.
국가가 결정하고 조직이 집행한 일에는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계획을 세운 사람, 지시를 내린 사람, 명령을 수행한 사람의 행위는 서로 다릅니다. ‘독일이 했다’는 설명만으로는 각 피고인의 역할을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재판의 질문을 단순히 선한 나라와 악한 나라의 대결로 읽으면 핵심이 흐려집니다. 어떤 범죄가 있었는지, 특정 피고인이 그 범죄에 어떻게 관여했는지, 이를 무엇으로 입증하는지를 구분해야 개인의 책임을 말할 수 있습니다.
명령은 행위를 설명하지만 모두 지워 주지는 않는다
피고인들은 자신이 상부의 명령을 따랐다고 주장했습니다. 조직 안에서 행동했다는 사실은 행위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그러나 명령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책임이 사라진다면, 명령 체계가 정교한 조직일수록 책임을 찾기 어려워집니다.
1950년 유엔 국제법위원회가 정리한 뉘른베르크 원칙은 이 문제를 명시했습니다. 국가원수나 책임 있는 공직자였다는 사실만으로 책임을 면하지 않으며, 실제로 도덕적 선택이 가능했다면 정부나 상관의 명령도 면책의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선택 가능성이라는 조건을 빼면 안 됩니다. 모든 하급자의 처지와 강압의 정도가 같았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반대로 명령을 받았다는 말만으로 검토를 끝내서도 안 된다는 뜻입니다. 1950년의 원칙 정리와 1946년의 개별 판결 역시 같은 문서가 아니라는 점을 구별해야 합니다.
분노를 판결로 바꾸는 데 필요한 것
참혹한 결과를 안다는 사실만으로 각 피고인의 죄가 자동으로 입증되지는 않습니다. 문서와 증언을 통해 행위를 확인하고, 그 행위와 피고인을 연결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큰 조직에 속했다는 사실과 특정 범죄에 책임이 있다는 판단 사이에는 입증해야 할 단계가 있습니다.
주요 전범 재판에서는 12명에게 사형, 3명에게 종신형, 4명에게 유기징역이 선고되었고 3명은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 숫자는 모든 나치 범죄 재판의 합계가 아니라 해당 재판의 판결 결과입니다. 뉘른베르크에서는 이후 별도의 후속 재판들도 진행되었습니다.
함무라비 법에서 신분과 처벌을 읽었던 방식과 비교하면 법의 시대적 차이가 드러납니다. 두 제도를 같은 발전 단계에 놓기보다는, 어떤 사람에게 어떤 근거로 책임을 묻는지 각각의 기준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재판을 받을 권리도 원칙에 들어 있다
뉘른베르크 원칙에는 처벌의 근거만 들어 있지 않습니다. 원칙 V는 기소된 사람이 사실과 법에 관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명시합니다. 책임을 묻는다는 목적과 절차를 지킨다는 요구가 함께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를 오늘의 독서로 옮기면, 혐의와 판결을 구별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어떤 사건이 조사 중인지, 기소되었는지, 최종 판단이 내려졌는지를 구분하지 않으면 재판에 관한 보도가 곧바로 유죄 선언처럼 읽힐 수 있습니다. 이것은 특정한 현재 사건의 판단이 아니라 기록을 읽을 때의 기본적인 구별입니다.
전쟁을 막는 제도의 문제는 칸트가 평화를 조건의 문제로 다룬 이야기와도 연결됩니다. 다만 전쟁 전의 예방과 전쟁 뒤의 책임 추궁은 목적과 수단이 다른 일입니다.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80년 뒤에도 한 문장으로 끝낼 수 없는 질문
뉘른베르크를 오늘의 모든 국제재판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이후 만들어진 재판소들은 성립 근거와 관할, 적용하는 규정이 서로 다릅니다. 1946년의 선례만으로 현재의 개별 사건에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이유입니다.
80주년에 다시 읽을 만한 것은 책임을 나누어 묻는 방식입니다. 국가의 정책, 조직의 지시, 개인의 선택을 구별하되 서로의 연결을 끊지 않는 것입니다. 책임을 모두 지도자 한 사람에게 몰아도, 조직 전체에 흐릿하게 흩어 놓아도 구체적인 행위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명령이었다’는 말 다음에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요?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다른 선택이 가능했는지,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는지가 남습니다. 뉘른베르크의 기억은 빠른 비난보다 이 어려운 질문들을 끝까지 이어 가도록 요구합니다.
이야기의 바탕이 된 자료
- Verdicts of the IMT (새 창)뉘른베르크 재판 기념관 · 1946년 9월 30일·10월 1일 판결 및 유죄·무죄 선고
- Nuremberg Trials (새 창)미국 홀로코스트기념관 · Holocaust Encyclopedia · 국제군사재판, 피고인들의 명령 항변, 후속 재판
- Principles of International Law Recognized in the Charter of the Nürnberg Tribunal and in the Judgment of the Tribunal (새 창)유엔 국제법위원회 · 1950년 정리한 뉘른베르크 원칙 I–V: 개인 책임, 공직, 상관 명령, 공정한 재판
자료의 성격과 전승의 차이는 본문에서 구분해 설명합니다.
ONE THING TO REMEMBER
한 줄 정리
뉘른베르크의 유산은 국가와 명령 뒤에 개인의 책임을 숨길 수 없다는 원칙을, 구체적인 증거와 공정한 재판의 요구와 함께 남긴 데 있다.
CONTINUE THE 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