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이야기

흥선대원군은 왜 서원은 없애고 궁궐은 다시 지었을까?

서원 철폐와 경복궁 중건은 서로 모순된 정책이었을까요? 지방의 특권, 국가 재정, 왕권을 함께 놓고 흥선대원군의 개혁을 살펴봅니다.

큰 목재 기둥을 세우는 경복궁 중건 현장과 멀리 보이는 산
이야기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일러스트입니다. 실제 유물이나 검증된 역사 복원도가 아닙니다.

누군가는 흥선대원군을 낡은 특권에 맞선 개혁가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백성을 힘들게 한 권력자라고 부른다. 서원을 없앤 일과 거대한 궁궐 공사를 벌인 일을 나란히 놓으면 어느 평가를 따라야 할지 헷갈린다. 두 정책의 공통된 목적과 서로 다른 부담을 나누어 보면 이 모순은 조금 풀린다.

왕이 아니었지만 국정을 움직였다

흥선대원군은 고종의 아버지였다. 어린 고종이 왕위에 오른 뒤 국정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자신이 국왕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권력을 잡은 시기 조선은 세도정치와 재정 문제, 지방 사회의 불만을 안고 있었다. 왕실의 통치력을 회복한다는 명분은 그 상황에서 힘을 얻었다.

여기서 개혁이라는 말은 오늘날의 민주화와 같은 뜻이 아니다. 대원군이 바꾸려 한 것은 왕조의 기본 질서 자체라기보다 그 질서 안에서 통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문제였다. 사적인 권력을 약하게 만들고 국가가 자원과 사람을 더 직접 파악하려는 정책은 백성의 부담을 덜기도 했지만, 국가의 요구를 강화하기도 했다.

배움의 공간은 어떻게 특권이 되었나

서원은 학문을 가르치고 선현을 제사하는 공간이었다. 오랫동안 지역의 교육과 문화에 기여했다는 점을 지워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일부 서원은 토지와 사람에 관한 특권을 누리고, 지방의 유력 가문이 영향력을 유지하는 기반이 되었다. 국가가 걷을 세금과 확보할 노동력이 빠져나가는 문제도 생겼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는 이런 사적 권력을 누르는 조치였다. 1871년에는 일부만 남기는 대대적인 정리가 이루어졌다. 이를 단순히 공부하는 사람을 싫어해서 학교를 없앤 사건으로 볼 수는 없다. 반대로 모든 서원이 동일한 폐단을 가졌다고 몰아붙여도 곤란하다. 교육 시설의 기능과 정치·경제적 특권은 구분해 살펴야 한다.

양반에게도 군포를 걷는다는 것

호포제는 군포 부담을 양반 가호에도 확대하는 방향으로 시행되었다. 신분에 따른 부담의 차이를 줄였다는 점에서 눈에 띄는 정책이었다. 평소 군포를 내던 사람들에게는 다른 계층이 누리던 면제의 벽을 흔드는 변화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호포제가 곧 양반 신분의 폐지를 뜻하지는 않는다. 누가 세금을 부담하는지 바꾸는 일과 사회적 신분 체계 전체를 없애는 일은 다르다. 고려 광종의 노비안검법도 같은 구분이 필요하다. 특정한 폐단을 고치는 조치를 현대적인 평등 제도의 완성으로 번역하면 당시 정책의 범위와 한계를 함께 놓친다.

다시 세운 궁궐, 늘어난 부담

경복궁 중건은 위축된 왕실의 위엄을 되살리는 사업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오랫동안 재건되지 못한 법궁을 세운다는 것은 통치의 중심이 건재함을 보이는 일이었다. 지방의 특권을 정리하는 정책과 궁궐을 세우는 정책은 왕권 강화라는 방향에서는 이어져 있었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큰 공사에는 돈과 목재와 노동이 필요했다. 원납전이라는 이름의 모금은 부담으로 작용했고, 당백전의 발행과 유통은 화폐 질서에 혼란을 더했다. 재정을 확보하려던 수단이 거래와 생활을 어렵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왕실의 권위를 높인다는 목적이 공사에 드는 사회적 비용을 저절로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같은 방향, 서로 다른 결과

서원 철폐와 경복궁 중건은 정책의 의도만 보면 모순이 적다. 국가와 왕실을 중심에 세우려는 두 방법이었다. 하지만 누가 혜택을 보고 누가 비용을 감당하는지를 물으면 결과가 갈라진다. 한 정책으로 줄어든 부담이 다른 정책으로 다시 커질 수도 있었다.

정조의 수원 화성 역시 왕실의 공간을 만드는 사업이었지만, 시대와 재정 운영, 도시의 목적은 달랐다. 둘을 같은 성공이나 실패의 공식에 넣을 수는 없다. 대원군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질문은 개혁가인지 아닌지를 한 단어로 정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바꾸어 누구의 힘을 키웠고, 그 과정에서 누가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따지는 것이다.

이야기의 바탕이 된 자료

  1. 서원 철폐와 경복궁 중건 (새 창)국사편찬위원회 · 신편 한국사 37권
  2. 호포제 실시 (새 창)국사편찬위원회 · 매천야록 관련 사료
  3. 당백전의 발행과 유통 (새 창)국사편찬위원회 · 화폐와 재정 부담

자료의 성격과 전승의 차이는 본문에서 구분해 설명합니다.

ONE THING TO REMEMBER

한 줄 정리

서원 철폐와 경복궁 중건은 모두 왕권 강화와 연결되었지만, 백성에게 미친 부담은 서로 달랐습니다.

김주리 · 한국사 이야기이 이야기의 오류 제보